앨범 제목에 ‘Gray’가 있다. 미국의 헤비메탈 그룹 슬립낫(Slipknot)의 창단 멤버인 폴 그레이(Paul Gray. 베이스)의 성이다. 2010년 폴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비보였다. 지난해 조이 조디슨(Joey Jordison. 드럼)까지 빠지면서 슬립낫은 또 한번 휘청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나머지 멤버들은 곧 제자리로 돌아와 제역할을 다했다. 거의 6년 만에 나온 신보이자 다섯 번째 정규 앨범에서 슬립낫은 여전히 대중을 윽박지르고 위협하고 있다. 멤버 명단에 변화가 생기고 공백기가 다소 길어진 것만 빼면 별로 특기할 게 없을 정도다.
그룹의 빈 자리 두 곳을 누가 채웠는가, 그래서 음악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하는 것이 신보를 둘러싼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는데, 결론적으로 이 질문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머지 멤버들이 새로운 공식 멤버를 영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보 작업을 진행해 슬립낫 특유의 성향이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그저 활동 초기의 파괴력과 [Vol.3 (Subliminal Verses)](2004)부터 부각된 멜로디가 어우러지면서, 그룹의 새로운 걸작이 탄생했을 뿐이다.
구심점은 역시 코리 테일러(Corey Taylor. 보컬)의 목소리다. 다양한 테크닉이 가능한 그의 ‘광대역’ 보컬은 작품의 기승전결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코리의 목소리가 뿜어내는 강력한 카리스마 덕에 모든 수록곡들이 앨범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The Devil In I”의 역동적인 흐름이든, “Custer”의 노골적인 폭력성이든, 모든 감상 포인트가 그의 절창을 통해 선명해진다. 두 멤버들의 공백을 느낄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처럼 코리가 건재하는 한, 슬립낫은 계속 ‘무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