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4년 10월 26일 (일) 오후 8시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980년대 중반 조동익과 함께한 포크/퓨전 그룹 ‘어떤 날’로 출발해 그 후에는 솔로 어쿠스틱/클래식 기타 뮤지션으로서, 그리고 1990년대 유학생활 이후에는 영화음악 전문 제작자로서 그 명성을 지속해왔던 이병우가 1년만에 음악 팬들과 소통하기 위한 공연을 개최했다. 그는 2003년 정규 5집 [흡수]를 내놓은 후부터 1년에 한 번씩은 꾸준히 공연을 개최해왔고, 그것이 솔로 기타 콘서트였건, 아니면 밴드나 오케스트라를 대동한 콘서트였건 자신의 현재를 공연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영화 음악 OST 외에 그의 독집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왔다. 그렇지만 이번 공연에는 이전과는 다른 반가운 소식이 함께 찾아왔다. 바로 11년만의 정규작인 6집 [우주기타]의 내용물이 다 완성되었고, 올 연말 안에는 공개하겠다는 계획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을 통해서 그가 얼마만큼의 신곡을 들려줄 것인지, 그리고 그가 만든 수많은 영화 음악들 가운데 어떤 음악을 들려줄 지에 대해 기대감을 갖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은 1층이나 2층이나 그리 빈 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꽤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삼삼 오오 함께 공연장을 찾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남성관객들보다는 여성 관객들이 조금 더 많은 편이었지만. 일단 그는 공연 무대의 공간을 세 부분으로 정갈하게 나눠놓았음을 공연전 무대를 보며 확인할 수 있었다. 가운데에는 그가 기타를 들고 솔로로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관객들이 보기에 그의 왼편에는 스트링 중심의 오케스트라가 배치되고, 오른 편에는 밴드가 배치되는 형식을 취했다. 이를 바탕으로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이병우는 어느 순간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연주자들을 통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기타 연주를 그 위에 얹기도 하고, 한편으로 밴드와 함께 연주해야 하는 순간에는 보조 기타(염승재)-베이스(소은규)-키보드(홍준호)-드럼(조성수)와 함께 퀸텟의 일원으로서 완벽한 팀워크를 선사했다.
공연의 전반부는 이번 공연의 타이틀 대로 앞으로 발매될 정규 6집 [우주기타]에 담길 새 작품들이 주로 연주되었다. “거꾸로 매달린 바다”, “Grand Tour”, “Adventure”, “Polar Bear”, “작은 우주” 등이 그 노래들이었다. 그는 특히 자신이 직접 기타를 디자인, 제작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는 이번 공연에서 역시 두 대의 기타가 앞뒤로 붙어있는 자신의 고유한 기타를 활용해 연주를 했고, 또한 기타바와 이펙터를 활용해 팻 메스니(Pat Metheny)의 기타 신시사이저 연주와는 또 다른 기묘한 소리 변조의 매력을 들려주기도 하고, 부메랑 이펙터(연주를 즉석에서 녹음해 반복시키는 장치)를 활용해 드럼, 베이스 소리와 흡사한 리듬을 즉석에서 만들어 자신이 연주한 소리로만 몇 겹의 음을 쌓아 한 곡을 완성해내는 진짜 ‘원 맨 밴드’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공연의 중반부에는 윤건이 게스트로 등장해 그가 작곡한 영화음악 ‘장화,홍련’의 삽입곡, 그리고 그가 1991년 작곡자이자 제작자로 참여했던 양희은의 대표곡 “사랑, 그 쓸쓸함에 관하여”를 노래했다.
후반부는 역시 2000년대의 그의 커리어에 걸맞게 그가 작곡했던 영화 음악들은 오케스트라와, 또는 오케스트라+밴드의 포맷으로 진행되었다. 그가 큰 애정을 갖고 있고 초창기에 참여한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의 “Prologue”를 시작으로 김혜자의 열연으로 기억되는 영화 ‘마더’의 도입과 엔딩 장면에서 큰 인상을 남겼던 곡인 “춤”, 영화 ‘일번지의 기적’에 나왔던 “나쁜 녀석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걸작 ‘괴물’의 OST “한강 찬가” 등이 연주되는 동안 영화의 장면들이 무대 뒤 스크린에 상영되었고, 이를 통해 영화를 감상할 때에는 주의깊게 듣지 못하고 놓쳤던 곡들마저 이 무대를 통해 더욱 확실히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가장 최근에 그는 연말에 개봉할 새 영화 ‘국제 시장’의 음악을 담당했고, 그 속에서 중요 테마들만 먼저 맛배기로 보여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다. 영화의 배경음악을 먼저 듣고 더욱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 그것 역시 이런 콘서트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는 공연 중간에 어떤 면에서는 매우 ‘썰렁한’ 농담들을 던지며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사실 그것은 팬들과의 간격을 좁히는 하나의 전략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면에서 치밀한 뮤지션이기 전에 한 명의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이병우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번 공연의 즐거움이었다.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그는 (조금은 뜬금없게도) “애국가”를 그의 기타 솔로로 연주하고 조용히 무대를 떠났지만, 가을 비가 내리던 10월의 일요일 밤은 이미 그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로 촉촉히 젖어 있었다. (김성환)